그냥 슬플때

혼잣말 2004. 3. 24. 00:33


물건 하나만 팔아달라고 다짜고짜 초인종을 누른 그 형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고 당연히 열어주어야 할 것 같아 대문 버튼을 눌렀다.

커다란 가방을 지고 신발간에 들어선 사람은 대학생 나이는 되어보이는 형님.

가방을 열자 잡다한 물품들이 쏟아졌다.. 나프탈렌, 칼갈이, 벽걸이..

멍하게 내가 어쩔줄 모르는 사이 엄마가 오셨고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다그치셨다.

죄송하다며... 꼭 하나만 사 달라고 애걸하는 그 형.

"이거 냉장고에 넣으시면요.. 냄새가 싹 사라져요"

싹 사라져요...하는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탈취제 하나를 천원에 사시고 형을 보내셨다. 나에겐 아무한테나 문 열어주지 말라고 하셨다.




대학교 1학년 즈음이던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어느 낮.

역앞 지하도에서 도색잡지를 팔던 한 할아버지를 본 때 같다.

두권에 천원하는 뻘건 잡지를 펼쳐놓고 힘 없이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왜 그렇게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되던지.



단지 내가 그 상황에 없었다고 해서, 혹은 만족할 만큼 자선을 베풀음으로써, 혹은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이야기 함으로써.. 면할 수 있는 기분은 아닌 것이다.

세상의 무거움. 100% 인정해 버리기도 힘든 현실을 그냥저냥한 타협점을 찾아 그때그때 어떻게든...


음.. 또 그렇게 자조하진 말아야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