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best

여러가지 2016. 12. 30. 10:55



훗- 몇년만의 베스트 선정인지.

단절.. 이라고 하면 웃기는 얘기겠지만. 이것도 그냥 단층이라고 해두자.



o 소설 - 참담한 빛(백수린)

문학이라 지칭되는 일련의 활동이 가지는 스펙트럼은 넓으면서도 매우 좁다. 신경숙 사건 이후 한국문단 까기는 거의 국민 스포츠가 되어버릴 지경이었지만, 관심없던 내가 보기에도 뭐 평소에 얼마나 관심들이 있었다고.. 라고 반발심이 드는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넓게보면 디워 같은 사태로 촉발된 반 전문가주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워낙에 그들만의 리그였고 수상권력, 대학권력, 젠더권력 등이 점철된 케케묵은 고리타분함이 만연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텍스트라는 미디어가 가지는 너무 오래된 역사의 한계이기도 하기에 억울할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온갖 최신 테크놀러지 장비와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곁들이기도 어렵고. (고작 북콘서트라니.. 불쌍해..) 

아무튼 이 책, 그러한 소위 주류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관념적 사변의 안드로메다를 여행하지도 않았고 그놈의 소위 있어보이는 문어체도, 시류에 젖은 구어체도 아닌 잡힐듯한 현실과 맞닿은 허우적임을 주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o 비소설 - 면역에 관하여(율라 비스)

워.. 정말 감탄사 - 가슴 깊은 곳의 공감이 우러내는 저주파가 밀어내는 탄식에 가까운 - 를 연발하게 하는 책이다.

양육자로서의 자아가 사회와 과학의 객관성을 이렇게도 통찰할 수 있구나. 반대로 합리적 이성의 두뇌가 불합리하고 감정적인 개개인과 조직의 행위들을 따듯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이해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했다.


o 영화 - 우리들(윤가은)

엔딩크레딧 내내 투투썸즈업을 유발하는 영화를 선정할 수도 있었지만 이 작품이 주는 묵직한 잔향이 오래 남았다.

영화보다 더한 스펙타클의 현실을 사는 우리가 일상보다 사실적인 스크린 속의 삶을 바라볼 때 느끼게 되는 여운이란 그런걸까. 대등한 인격체이면서도 최대한 보호받아야 하는 모순적인 존재들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 그럼에도 아무리해도 다가갈 수 없는 한계의 지점들, 그저 놓아버리고 지켜보기만 해야할 영역들에 대한 묘사가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o 인물 - 백남기 농민

여러번 이야기했듯이 나는 평화시위 중에 경찰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백남기씨가 아닌, 가장 투쟁의 선두에서 싸우다 돌아가신 이로서 이분을 추모한다. 물론 촛불 이후에야 겨우 고개를 든 폭력/비폭력 논쟁이 가지는 비굴함도 이해가 간다만 지나고나서 뒤에서 후희로나 회자되는 폭력투쟁이 의미가 있을까. 그냥 그분은 그렇게 그자리에 싸우며 서 있었던 분이다. 거세된 비폭력이 싫으면 차라리 데모당처럼 자신있게 드러내고 전위에 서는게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을지.


o 장소 - 타이베이, 대만

이 나라에 대한 독특한 인상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걸까.

뜨내기 여행객만이 아닌 단기거주민의 가족으로서 여러날을 접했던 이곳.

가식도 아니고 순박함만도 아닌 친절은 어디에서 우러나는 걸까, 소득수준이 결코 높지 않음에도 느껴지는 마음의 곳간들, 생각보다 합리적인 시스템, 수준높은 성평등, 최근 훌륭한 젠더이슈 성취까지..

순탄치 않은 역사 속에 소외와 고립, 내부의 갈등까지 겪으면서도 놓치지 않은 무언가를 가진 나라였다.

너무 인상이 좋았나.. 헐-




그렇게 서른 여덟, 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