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가는거"에 있어서는 대선배님이시구나..
"방망이 깎던 노인" 생각도 나고.. 주변에서 칼갈이, 우산 고치는 아저씨 못 본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그나저나 과메기.. 코앞에 두고서 언제 먹어보나-
"나는 칼쟁이가 아니라 칼 교수요" 구룡포 오일장에서 만난 사람
권선희(thskrqlok) 기자
3일과 8일은 구룡포 오일장이다. 이른 아침부터 겉잎 펄럭이는 배추를 푸는 리어카들 분주하고 눌태리에서 삼정에서 구포에서 곱게 차려입고 나선 할매들로 읍내가 술렁인다. 사려는 이보다 팔려는 이가 더 많이 나와 앉아 다소 휑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장날은 장날이다.
사돈을 만나 손을 이끌고 국수집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허름한 탁주 집으로 모여들어 일찌감치 거나해진 얼굴들. 뽕짝을 틀고 고등어를 파는 총각의 신나는 춤사위에 덩달아 가슴이 들썩인다. 정육점이고 닭집이고 국수공장이고 시누대에 빽빽이 걸려 말라가는 과메기가 윤기 자르르하다.
▲ 겨울철 별미 과메기
“나는 칼쟁이가 아니라 칼 교수요. 나만큼 칼을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소.”
장터 양지바른 한 귀퉁이에 앉아 손바닥만한 숫돌에 칼을 가는 김주식(58)씨가 우스갯소리처럼 내뱉는 한 마디. 주변엔 온통 크고 작은, 길고 짧은 칼들과 희한하게 생긴 쇠붙이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다.
할머니들이 신문지에 둘둘 말은 칼을 들고 와서 내밀자 마치 오래된 이웃을 대하듯 이것저것 안부를 묻고는 이내 집어들고 칼을 간다. 장비라야 고임쇠와 숫돌 그리고 두부 상자에 담긴 물뿐이다. 납작한 널빤지에 걸터앉아 마디 굵은 손으로 싸악 싸악 밀 때마다 뽀얗게 일어서는 칼의 날. 이리보고 저리보고 갈고 또 갈고 손끝으로 살짝 건들어 보고서야 흡족한 듯 건네준다.
▲ 절개한 과메기
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백시야(맏형을 높여 이르는 말)가 하던 칼공장 일을 열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하였다. 그 후 맏형은 군대생활을 하던 제주도가 좋았던지 건너가 서귀포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고, 그는 경주로 와서 지금까지 줄곧 43년이란 세월을 칼을 만들며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남보다 눈썰미가 있었던 탓에 다양한 형태의 칼을 이리저리 만들어내서 칼공장을 하던 시절에는 부산이고 어디고 주문량이 많아 도매로 넘겨주기 바빴다. 그 때는 살림도 불어 평소 큰 욕심 없던 그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르막 끝에는 내리막도 있는 법. 98년에 안전사고가 나는 바람에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경주 외동에서 조그맣게 가내작업을 하며 장날마다 이곳저곳 물건을 팔러 다닌다.
그는 주로 죽도시장, 강구 등 바닷가 주변 장을 찾아다니는데 이곳 구룡포 장에 처음 온 것은 99년도. 해변가라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칼의 쓰임새가 많은 데다가 읍민 중 90%가 단골이기 때문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 공들여 가는 칼
지금은 과메기 철이다. 예전처럼 통마리를 건조하는 게 아니라 뼈를 추려 말리기 때문에 냉동꽁치의 뼈를 잘 발라내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손에 딱 맞는 칼이다. 손님 중 대부분이 과메기 작업용 칼을 고르러 오거나 이미 사간 칼을 다시 갈러 오는데 그가 일러준 대로 잘 사용한 칼은 그 매무새가 곱게 유지되지만 함부로 사용한 칼은 같은 기간에도 엉망이 되어 온다며 일일이 자신이 만든 칼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이기 얼망교?”
“뭣에 쓰시게요?”
“과메기 맨들라꼬요.”
“그러면 그건 안 됩니다. 누가 쓸 건데요? 아지매가 쓸 거요 아저씨가 쓸 거요?”
▲ 칼을 갈다
그는 무작정 칼을 팔지는 않는다고 했다. 용도에 따라 쓰는 사람에 따라 잘 맞춰가야 칼이 제 몫을 다하고 일하는 사람도 힘이 덜 들고 손질도 잘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칼은 예민하다는 것. 그가 가져 온 칼은 간혹 찾는 사람들의 구미를 위해 일본에서 수입해 온 것이 몇 개 있지만 거의 대부분 손수 만든 것이다.
▲ 다양한 칼들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는 갈고리부터 안게이(말똥성게) 까는 칼, 아귀 장만하는 칼, 회 뜨는 칼, 과메기 뜨는 칼, 그리고 식육점에서 쓰는 칼, 시금치 도리는 칼까지 용도에 따라 길고 짧고 배가 부르고 안 부르고 이곳에 나온 것보다 더 많은 모양의 칼들이 집에 가면 구석구석 수북하다고 한다.
“기계로 만든 칼들이 시중에 뻗어 나가고 있는데 그런 칼들은 나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으면 들지를 않습니다. 이건 수입품인데 이걸 그냥 쓰면 암만 새 거라도 안듭니다. 우리 집에 물레방아식으로 물을 같이 안고 도는 둘레판만한 칼 가는 연마가 있는데 그걸로 다시 갈아야 듭니다. 그게 쇠붙이이긴 하지만 정성이 들어가야 제 노릇을 하는 거지요. 칼을 내 집사람이 쓴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하루아침에 담배벌이도 못하고 다음 장날부터 못나오는 거지요.”
▲ 칼을 고르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기본적인 칼 이외에도 좀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칼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구룡포 사람들은 타 지역보다 좀 더 짤막하고 야문 안게이 칼을 찾기 때문에 특별히 만들어 오기도 한다.
또 돔베기(상어의 일종, 아주 덩치가 큼)의 경우 워낙 크기 때문에 꽁꽁 얼려서 정육점에서 쓰는 기계처럼 생긴 것에다 자르지만, 그래도 손작업 하는 사람들이나 고래 작업 하는 사람들은 가끔 50cm~ 1m나 되는 칼을 직접 주문을 하기도 한다.
▲ 구룡포 사람들만이 주문한 안게이 칼
그는 구룡포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다고 한다. 칼이 꾸준히 팔리는 걸 보면 부지런히 성실히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느 물건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수명이 차이가 난다. 다시 들고 온 칼을 보면 그 주인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대로 느껴진다는 김주식씨는 평생 자신이 해 온 일이 돌아보면 그래도 보람있었다고 한다.
일거리가 없다고 빈둥빈둥 놀면서도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제 입맛만 찾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고. 남 보기 좋고 편한 것만 찾으니 이 업을 이을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며 나이가 좀 들긴 했어도 지금이라도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야물게 벌려 보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니 이래저래 하는 데까지 하다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아저씨 말씀 끝이 씁쓸하다.
▲ 칼과 연장들
좀 갈아달라고 몇 번이고 주문하고 시장을 둘러보러 가셨던 할머니가 장바구니 가득 찬거리를 사들고 허리 구부려 다시 오셨다. 갈아놓은 칼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넣어주시며 속주머니를 뒤지는 할머니 등을 떠민다. 그냥 가시라고, 칼 잘 쓰시라고, 일러준 대로만 쓰면 아무 탈없을 거라고, 다음 장날에 또 갈러 오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