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기록 밀어주기로 얼룩진 2003~04 프로농구 속에 허재의 은퇴 발표 해프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었다. 이미 불혹의 나이인 한 농구 스타의 은퇴, 실은 그 자신도 어안이 벙벙해했던 사건...

다행히 5월 2일, 수많은 지인들과 팬들의 성원을 통해 그제서야 우리는 한시대 최고의 바스켓맨을 제대로 전송할 수 있었다.


스포츠 자체에 그렇게 열광적인 편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스포츠 중계는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스포츠도 보는것 보다는 직접 하는것, 그래서 농구를 좋아했다. 거꾸로 말하면, 내가 해서 재미있는 스포츠가 보기에도 재미있었다.

한참 농구 붐이 일던 시절, 그는 우리의 우상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과 가장 근접했던 허재... 미국에 조던이 있었다면 한국엔 허재가 있었다. 막강을 자랑하던 농구 대잔치 시절, 그의 플레이는 동시대의 다른 이들과는 달라도 뭐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말 그대로 '해본 사람은 안다.'

코트에서 한순간 한순간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1초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일어난 판단과 반사적인 움직임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인지. 농구에는 그 1초간의 다이내믹함이 존재한다. 그래서 한편의 멋진 경기를 보노라면 이미 내 자신이 그 선수와 동일시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워낙이 대단한 선수여서일까.. 허재만큼 또 미움을 많이 받은 선수도 없다. 툭하면 드런 성질, 주정뱅이, 싸움꾼, 집요한 잔꾀 같은 이미지가 붙어다녔다.

비록 내가 농구를 선수로 해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뛸만큼 뛰어봤기 때문에 그를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 왜 거기서 그렇게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든지, 수많은 보이지 않는 반칙과 심리공격을 이겨내려면 얼마나 자신도 독해져야하는지... 때문에 내 주변에 농구를 좀 한 친구치고 허재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세월앞에 장사 없더라..

그런 그도 나이가 들었다. 날카로운 패스는 무뎌졌고 솟구치던 점프는 밋밋해졌다. 주름이 늘어난 얼굴에 머리숱도 옅어졌다.

하지만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챔피언전 마지막 경기, 2쿼터에 코트에 나선 그는 인사이드에서 슛, 드리블 후 스톱-뱅크 슛을 날렸다. 프로 무대의 마지막 모습...



... 그렇게 한 시대의 농구인이 사라졌다. 물론 프로농구는 계속될 것이고, 농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앞으로도 잘 나갈테지만.. 음.. 나에게는 크게 뭔가가 하나 닫혀가는 느낌이다.

나이가 차고 머리가 차서 그런지 이제 스포츠 플레이에 내 자신을 대입시키기는 더 힘들어진다. 모두가 열광했던 월드컵때, 사실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굳이 스포츠의 사회적 의미 같은 얘기를 연관시키지 않더라도, 이제 더이상 마음속에 우상으로 남을 스포츠인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나마 얼마전까지 임요환을 열심히 응원한거 같다.. ;;)

허재형 안녕히.. 그리고 젊은날의 스포츠 스타들이여 안녕히.. 비록 보내지만, 허재- 당신은 정말 멋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