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산행에서 느꼈던 것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자신에겐 특별한 노스탤지어..
물론 내가 세상 빛을 본 곳은 병원이었고 그 뒤로도 몇일간 병원을 나서질 못해 엄니 속을 썩힌 역사가 있었지만.. 초등학교전까지 살았던 이곳이 나의 고향, 나의 집이다..
부산행의 목적중에 큰 하나를 차지했던 것...
내가 태어난 곳. 일부러 택시를 멀찌감치 내려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그리도 집착했던 이유는, 정말로 이곳을 떠난이후 20년 정도만에 처음 와본다는 것.
삼익 아파트..
차마 바로 들어가보지 못하고 도로 건너편의 삼익 아파트부터 둘러봤다. 삼익아파트는 좋은 기억이 있지않다. 세상이 우리 아파트 주위만인것처럼 좁았던 시절, 딱한번 친구들과 멋대로 길을 건너 이곳에서 유치원 버스를 탔었다. 그때는 한참 지하철 공사를 하던 차라 도로가 복잡할 시절. 멋대로 대로를 건너 사라진 아들을 찾아 부리나케 오셨던 엄마에게 난 오지게 혼나야했다. 챙피하게 유치원 버스 안에서 질질 울면서... 아무튼 그 장소다.
집 앞 골목..
다시 길을 건너(유치원에서 배운대로 손을 들고 건넜던 대로엔 지하도까지 생겼더라..) 골목으로 들어서던 시간. 이 골목에도 수많은 에피소드가.. 공사장에서 쌓아둔 철제 빔에 기어들어갔다가 숨막혀 죽을뻔한 때가 생각난다. 다행히 길가던 아저씨가 꺼내주셨고 목숨을 부지한 안도감에 집에서 먹었던 우유는 유난히 맛있었다..
아..
First Impact... 슈퍼마켓이 없어져버리고 왠 식당이 생겼다. 안타까움... 그 슈퍼에서 사먹은 당시 200원 거금의 '우카'빵만해도 수백개는 되었을텐데... 그리고 방역 아저씨가 연기를 뿜을때면 언제나 무서워 엉엉 울면서 도망쳐 들어갔던 그곳.. 이렇게 사라져버렸을줄이야...
실망..
Second Impact... 사라졌다... 놀이터. 영화였다면 털썩 주저앉는 씬이 어울렸을텐데... 참 울고 싶었다. 사라진 놀이터.. 그토록 많은 시간 지냈던 그곳은 이제 없다니.. 널찍한 모래밭을 모두 밀어버리고 보기에도 을씨년스럽게 놀이기구 몇개만 남겨두었다. 나의 유년기 대부분을 보낸 놀이터..
뎅그러니.. 팽이의자.
오히려 남아있는것이 더 초라한 그네...
어려운 몇 걸음을 내딛은 곳엔..
솔직히 이정도이리라곤 예상지 못했다.. 높았던 정화조통 건너로 미끄럼틀이 있었던.. 그 모습은 너무도 희미해진 기억 한구석에만 남게되었다. 뒷길로 이어지던 통로는 주택이 들어서면서 꽉 막혀 버렸다. 가슴 한구석처럼..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았을 광경.
철공소가 있었고 가장 친했던 판수녀석이 살던 곳. 말끔한 자동차 판매센터가 들어섰다.
옥상에서..
수위 아저씨에게 혼나가며 올라간 옥상. 아빠와 밤에 자주 올라왔었다. 그때의 별하늘은 기억에도 뚜렷하다. 이후 고2때 지리산에 가기전까진, 다시 볼 수 없었던 찬란했던 별하늘... 머리가 크고 학교에서 '요람기'를 읽게되었을때, 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하늘의 중간에, 삼촌과 날리던 가오리연이 날으는 장면이 머릿 속에 떠오른 까닭이었다. 꿈을 실어 멀리 멀리 보냈던 연...
옥상에서..두번째
뒷베란다로 볼 수 있었던 풍경. 언제나 쓰레기차와 화장지 파는 리어카가 지나다니면 차가운 베란다에서 떨면서도 끝까지 그걸 지켜보고있었다. (덕분에 그 화장지 멘트는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아예 건물이 모든 걸 가려버렸다..
완전히 복개되어버린 뒷동네 하천.
팔십 몇년도던가.. 한번 거대한 물난리가 있었다. 엄마가 허리까지 물에 잠겨가며 누나를 데리고 들어왔을 정도로... 그때 하천이 범람하다시피해서, 멀리서 본 나는 한길 깊이는 되던 하천이 땅이되어버린줄 알았다.
갑자기 이병주씨의 '세우지 않은 비명'이 생각났다... 시한부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젊은날 자신의 과오가 남아있을 옛날 장소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정리되었음을 확인 하고..
내 나이와 같을테니 저 아파트는 26년이 된 셈이다. 무려 20년만에 찾아왔으니 다시 찾아올때까지 그대로 있으란 법이 없다. 언제 헐리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버릴지 모르는 것이다.
이번 부산행은 그런 조급증의 결과이기도 했다. 사라지기 전에, 이 비루한 문명의 이기인 디지털 카메라에라도 남겼으면... 최소한 실망하더라도 후회는 않을테니까..
생각보다 눈으로 확인한 충격은 컸고 커다란 실망이었다. 만물유전... 이라고 이해는 해도 미련한 미련을 어떻게 할까..
고향 친구에게 옛 집을 찾아갔었단 이야기를 했더니 나이 50먹었냐고 핀잔을 준다. 맞아.. 웃기는 개인적 감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