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꽈리

혼잣말 2016. 3. 11. 13:55


 세상이 변했다지만 내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확인, 나보다 10살쯤 더 먹었든 나보다 10살쯤 어리든 내가 여전히 다른 세대의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다시 '허파꽈리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내가 허파 조직의 허파꽈리로서 기여해야 할 어떤 사명감에 대해서는 불량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누군가 내 곁에 존재하고 있고 내가 스스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내 곁의 누군가가 괴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J와 내가 소속되어 있는 거대한 유기체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고 그것이 정말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나의 호흡을 통해서 내가 신선하게 붉은 빛의 허파꽈리로 존재해야만 J도 건강하게 붉은 빛의 허파꽈리가 될 수 있고, 또한 J가 열심히 호흡할 때만 나도 괴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서로가 알지 못하는 세계 혹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열린 창이다. 나는 J를 통해서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90년대 학번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J는 나를 통해서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종류의 진실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명확히 정의된 대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활동가"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졸업 이후에 선택지는 결국은 2가지였는데,1)취업 2)공부

헌데 "활동을 계속한다"라는 영역이 또하나 있었다.


활동을 그만두고 취업을 한다는 어떤 친구의 소식이나, 무언가 행간에 많은 것이 느껴지는 전직 활동가 친구의 글들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주변의 활동가들의 소식만으로도 삶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건, 내 행동들이 그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쪽팔릴까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영향일지라도.. 팍팍한 삶 속에선 참 고마운 거였다.


허나 어째 갈수록 그 영역이 더 힘들어지는 걸까.

리프킨선생이던가.. 노동이 종말하고 제3의 영역이 확대될거라고 했던거 같은데 그런 희망을 느껴본지 몇년 된 듯한 느낌적인 느낌.

대놓고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눈먼 돈들의 움직임과 대조되게, 이쪽진영을 갈수록 궁핍해졌다.

방향성을 찾기 어려워졌고 시계가 거꾸로 가는 듯한 조급함에 초조해질 수 밖에 없어보였다.

그 안에서 과거의 저 무거운 언어와 개념들은 아직도 불필요한 꼰대정신과 결합하여 건재했다.


쉽지않을거다. 한동안은 계속해서.

하지만 놓쳐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거다.

허파꽈리, 여전히 그게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