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25

혼잣말 2016. 3. 25. 16:06


기부하던 단체를 끊었다.

후원을 중단한다는 짧은 내 메일에 온 정중한 답신에 가슴이 좀 짠했다.

사실 얼마 되지않는 푼돈인데, 그냥 앞으로 기약없이 쪼들린 생활을 해야한다는 변명으로.

역시 때맞춰 공도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렌즈들이 쏟아진다. 이름마저 아주 음란마귀스럽게. 흥.


된장질도 엄청 좋아했는데 역시 끊어야했다.

출근길 파리크로와상 패스트리와 샷추가한 라떼로 시작하던 아침을 떠나보냈고

퇴근길 잠깐의 휴식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을 읽었고 웹툰 "한번 더 해요" 를 보았다.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대신 경험과 인지로 인한 비가역적 상태가 운명이란 생각을 했다.

머리 속이나마 자유롭길 바라지만 사고와 판단마저 이미 지나간 결정의 순간에 속박당해있는 느낌이다.

최근에 계속 꾸는 꿈마저도.


가처분, 소득도 사고도 행위도 드러난 덩어리들은 의미가 없다.

내가 쪼물닥거릴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서서히 밝은 빛으로 말라가기 시작한 찰흙마냥 딱딱하게 부스러진다.


...


지하철간에서 아리마 코세이의 달빛 연주를 들으며 난간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위로가 되지 못한다며 타박받자, 곁에 있을께.. 라고 주인공은 해맑게 웃는다. 

어차피 위로라는 행위의 속성은 어쩔 수가 없다. 화자에겐 오만이고 자기만족, 청자에겐 오지랖이거나 일시적 착각이다.

그래서 모든 위로들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이다.


"힘내라는 말에 왠지 기운이 빠지는 때가 있지"

"모두다 잘 될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나 역시 "슬픔은 슬픔으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많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