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글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내는 눈빛을 추파라고 하다니, 하고많은 말 중에 왜? 그러자 곧 그런것도 모르느냐는 듯 바람이 나를 보고 속삭였다.
'가을 다음엔 바로 겨울이니까.'
불모의 가사(假死)의 계절이 코앞이니까, 가을이야말로 추파가 다급해지는 시절이라고... 귓가를 뱅뱅 돈 뒤 사라졌다. 나는 오래전 추파를 추파라 부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만 웃었다."
"그런데 있죠, 그애 편지를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간 많은 말을 익혔는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새 말이 배우고 싶다고. 그애 때문인지 잘 몰겠지만, 자꾸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땐 그냥 짐작이었지.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쪽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깨달음'이라는 것,
세포가 잘 분열하던 시기에 그 낱말은 무척 신비롭고 오묘한 어떤 현상을 일컬었다. 긴 고뇌와 노력 끝에 어느순간 터져나오듯 발현하는 세계의 확장이었다.
지금은 많이 다르다.
아주 뼈아픈 것, 몰랐던 새로운 건 아니지만 묵직하게 어깨를 눌러오듯 엄습하는 것. 세상으로 확장되기 보다는 내 안에 깊숙히 존재하던 것에 대한 자가면역 같은 것이다.
링크 외에는 그닥 뚜렷한 출처도 찾기 어려운 말도안되는 이론이지만 논리가 아닌 감성의 영역에서는 제법 이해할 수 있다. 상대적인 흐름 속에서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한 존재는 시간의 속박이 아찔하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들의 생애주기를 보며 더욱 확신하게 되겠지.
"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지만"
- 언젠가 너로 인해, 가을방학
"얼마나 지나야 소년은 비로소 알게 될는지, 이미 끝을 예감한 개에게 남은 날의 의미를"
- 소년, 이적
- http://www.hani.co.kr/arti/SERIES/19/225578.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