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래 묵은 상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도 그렇지만, 호모 폴리티쿠스는 사회로부터 정치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내 첫 대선표를 받아갔던 그 대통령 생각.
얄궂게도 대선 전날 벌어진 웃기는 상황에 마음이 동요했고 깝깝한 심정으로 표심을 바꿨던.
솔직히 왜 기대가 없었으랴. 그 이후는 뭔가 내리막길이었다.
이렇게 밀리면 그 다음은 파쇼가 들어설 거라는 걱정을 한 이들이 적지 않았었지.
그러고 십년여.
나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두명의 자식을 낳아 기를 그시간 동안 나도 변하고 세상도 참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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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만인지 모를 시국선언.
광화문, 세월호 광장, 찬바람이 소매로 파고 들었지만 춥지 않았던.
담담하게 읽혀내려간 선언문, 맞잡은 손들.
왁자지껄했던 종로의 뒷풀이 한잔.
점거한 본관에서 시험공부도 취직준비도 했다던 이야기,
이번만은 정말 이겨보고 싶다는, 이기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
백남기 선생의 장례에 합창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노래는 못한다는 겸양의 이야기. 이야기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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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호출에 함께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르신 가시는 길 조금은 편히 보내드릴 수 있었을 것 같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파렴치한 폭거를 두려워해야 했던 시간들, 외려 두눈 부릅뜨는 가해자들에게 사과하나 받지 못하였지만
거짓말처럼 사건들이 터지고 민심이 돌아서 이제는 저들이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 입구를 나서니 집회물결이더라는 어떤 감탄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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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기보다는 그저 바람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기보다
언젠가 서서히 반대로 불게 될 그 바람에 몸을 실어야지." - 1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