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토크라 쓰고 보톡스라 읽는...



종합해보자면, 유년 시절부터 축적된 건물에 대한 경험과 취향이 결합된 오프라인 데이터와 다양한 좌표를 기반으로 아카이빙된 온라인 데이터가 위계 없이 뒤섞여 다층적인 '건물-감각'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최용준, 박수환 나승, 라야 등을 포함한 이 세대들은 기존의 건축사진과 다른 물리적/심리적 시야를 지녔으며, 근본적으로는 건물이라는 같은 대상을 찍어도 구사하는 언어와 감각 자체가 다른 셈이다. 전통적인 건축사진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파사드를 포착한다면, 이들은 앞서 언급된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신만의 파사드를 수집하는 셈이다. - p.30


익숙하지 않은 건물, 옥상까지 가는 계단은 대부분 어둡고 밖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다. 햇빛이 붉은 시간대가 길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옥상을 찾아 올라가는 동안 빛이 없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초조하고 급하면서도 분명하게 신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곤 한다. 문고리를 돌렸는데 잠겨있지 않고, 문을 여는 순간 상상보다 멋진 풍경이 펼쳐지면 정말로 기쁘다. 속이 뻥 뚫리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55


하지만 난 찍는 행위 자체에 큰 애정이 없다. 실제로 많이 찍지도 않고. 무엇을 찍고 싶을 때는 우선 구글 이미지, 플리커, 아카이브 등을 살펴본다.이를 통해 과거 혹은 동시대 사람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그 이미지들이 어떤 환경에서 보여지고 있는지, 어떻게 떠돌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미지들로 둘러 쌓인 지금 내가 보고 기록한 사진이 필요할지, 혹은 아카이브가 필요할지 그렇게 선택한 이미지를 어디에 침투시킬지를 고려한다. - p.144


다른 이의 카메라 앞에 설 때는 그림이 되는 기분이고, 나 자신을 찍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고, 다른 이들을 찍을 때는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제각기 좋아하는 일이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가장 편안하고, 카메라 뒤에 서서 다른 이를 담는 것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찍는 건 그 중간인 듯 싶은데, 외려 이 지점이 내가 갖는 특이점이라 생각한다. - p.182


그렇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진정성입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사진에 대해서 말하기를 바라십니까? 다른 사람들이 꽤 능숙하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나의 욕망을 은폐한다면, 내가 나의 욕망의 취향을 없애버린다면, 내가 나의 욕망을 허공 속에 내버려둔다면, 나는 나의 이야기들을 약화시키고, 무기력하고 비굴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용기의 문제도 아닙니다(나는 투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글쓰기의 진실이란 점에서 정당한 겁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더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지는 욕망의 본질입니다. -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