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혼잣말 2017. 9. 18. 13:03



떠나기 며칠전부터 자동차 정비며 애기들 동반이며 전화해서 꼼꼼이 따지시던 아버지.

그러나 정작 자식인 내게 중요했던 사항은 지난번 대판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갔다 오신 후 두분은 식사는 물론 한마디 일체의 교류가 없이 지내오시고 있단 점이다.

수년전에 같은 사안으로 온 가족 난리를 치고 부부상담도 교육도 받고 겨우 진정 좀 되었나 싶었지만 결국 되돌아 쳇바퀴인 셈.

남은 아파트 한채로 그저 여생을 넉넉치는 않더라도 굶을 걱정없이 보내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역시나 두분은 동상이몽, 최근의 부동산 광품에 옛 회한까지 되새김질해 또 난장판이 된 모양이다.


도대체 집안이 풍전등화인데 조상신이며 벌초며 선산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조상님들 제삿밥도 그만하면 어지간히 얻어드셨을텐데 거기에 갈려들어간 부녀자들의 노동과 갈등이 오히려 서릿발처럼 원령이 되게 생겼구마는.


06시에 뵙기로 했으나 05시에 한시간 일찍 경비교대를 부탁하신 아빠는 이미 30분전에 대로변까지 나와계시다 40분에 전화를 하셨다.

그 성격 너무 잘 알기에 사고 안날 선에서 악셀을 밟았고 약속시간보다 1시간도 훌쩍 전에 고성 묘터에 도착해버림.

그리곤 후다닥 샌드과자 몇개와 누룽지맛 캔디 몇개를 은박지에 담고 참이슬 한잔씩을 올리며 봉분 하나당 3분여에 끝났다.


네 알아요.

당신 마음도 돈 좀 들여서 가시기전에 싹 한번 정리하시고 싶으시단걸.

웃기게도 그러한 풍습들은 정작 간편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또 상당한 금전이 필요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사람의 미련과 희생 속에 흘러가다 결국 정리할 무엇마저 사라져버린다는 걸.

한해 한해 다른게 어르신 얼굴의 주름과 체력만이 아니라

같은 행위를 똑같이 하고 있음에도 훨씬더 허전하고 초라해진다는 걸.


나 역시도 나이들면 별 수 있겠냐마는, 무언가 유종이 있고 맺음이 필요한 일이라면

부디 한날이라도 아름다울 적에, 한 몸이라도 튼튼할 적에 내손으로 하리라 다짐했다.




가을 바람이 유난히 쓸쓸하던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