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127주년 노동자의 날.

바로 이 날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이들이, 6명이나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차라리 그들에겐 노동절 따위는 없는게 더 나을지 모른다. 최소한 협력업체만 뺑이치고 원청 정규직들은 놀러가는 날은 아닐테니. 최대의 황금연휴, 징검다리 휴일.. 그 허울좋은 디딤돌 사이에도 누군가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대하가 흘렀다.


모 대기업 노조는 공식적으로 비정규직을 가입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나. 사측이야 적당히 줄다리기하면 어쨌든 정해진 액수는 올려줄 것인데, 그 파이를 나누자니 배알이 꼴렸을까. 정규직 노사문제가 풀기쉬운 매듭이라면 비정규직은 기호도 생소한 미분방정식일 테니, 이것만 배제해도 뭔가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갈 듯 했겠지.


몸담은 회사도 똑같다.

익명게시판을 주름잡는 정규직 사무기술직군의 커밍아웃들, 난 더 노력해서 들어왔는데 왜 너희같은 부류와 과실을 나누어야 하나, 노조는 왜 맨날 판매직군, 전임직군 타령만 하고 사무기술직군은 찬밥이냐. 따로 만들자.. 등등.

날것의 욕망이 이글거리는 곳에서 노동마저도 계급의 층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연봉 육천만원 이상은 자영업잡니다.'

그렇게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의 상한선이 단호하게 그어졌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표심을 의식해서라도 완곡하게 하던 표현들이 아주 대놓고 기세등등하다.

이유는 아마도 단순할 것이다. '여기는 그래도 되니까'.



산적한 사회적 의제들이 놓여있지만 나는 노동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해결의지를 이번 대선의 판단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지금 내게 있어 노동이 당당할 수 없다면, 그건 아마도 당당하다 말하는 나의 노동이 딛고 선 자리에 쌓여있을 수많은 희생 때문이다.
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만큼은 그간 여야 거대정당간의 정권교체는 그리 큰 변곡점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저 경제민주화나 일자리문제, 갑을관계 따위의 접근으로는 건드릴 수 없다. 경제발전의 부수사안으로, 복지정책의 수혜대상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의 "노동"문제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더럽고 힘들고 비천한 이미지로 뒤덮혀버린 이 노동이란 것을 당연하고 당당한 우리의 권리로 바꾸어야한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