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결코 서두름이 없다. 아무리 긴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해야 하는 삶의 일상성을 존중한다. 또한 관공서에서 일을 보고 운동을 하고 친지들과 만나는 것도 존중한다. 아마 프랑스혁명 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난 파리 시민들이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느라 일을 하지 못했다면, 신발 수선공이나 재단사들은 밀린 일을 그 다음날인 15일에 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아침에 단두대에 있었다면 점심에는 낚시를 가거나 바느질을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대체 습격한 바스티유 감옥에서 뭘하며 온종일을 보내겠는가? 그건 무너진 베를린장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귀향, 베른하르트 슐링크
아침에 깨어보니 그분은 들어가셨다.
긴긴 시간들이다. 의미는 그 시간들 사이에 느긋하게 숨어있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고 사필귀정으로 모든 일이 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꼭 그런건 아니다.
태극기를 든 이를 조롱하고,
이 와중에도 헤어스타일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정치적 게으름을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 극복하는 움직임들에는 여전히 갑갑함이 밀려온다.
출근하는 나의 일상에서
우두머리들은 공공연한 부조리에 동참을 강요하고,
다수는 거기에 굴복하고 또 다수는 오히려 한발 더 앞장서고,
소수는 침묵하고 더 소수는 저항할 뿐임도 물론 그대로이다.
하지만 공기가 현저히 달라졌다.
부유물이 퍼져있는 대기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의 만나는 에너지들의 장에 대한 이야기다.
무의식적인 방어기제,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움츠림, 희망이 옅어진 곳에서의 공허한 허세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여유가 있으면서도 공세적이고, 충분한 개인의 성찰이면서도 근본적인 집단의 요구인 움직임들.
실은 무엇보다도 "승리"라 정확한 단어를 접할 수 있어 좋다.
승리의 경험, 원체험.
그런건 생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새겨지는 커다란 사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