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권력은 속세의 권력과 다르다.
세상의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었나보다. 그 권력이 꼭 필요하다고, 혹은 좋은 권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맞지만.. 또 틀리기도 하다. 때론 권력이란, 인간의 권력이란 스스로는 정화되지 않는 독과 같으니까.. 자본이 끊임없는 증식을 통하지 않고 유지될 수 없듯이, 권력 역시 스스로 과함을 모른다. 어느 순간에 "이만큼만 내게 힘이 있었다면!" 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 그런걸 느낀다. 그 힘은 세상의 힘.. 세속적인 권력이다.
최근 2~3년 사이 사회적 이슈들은 상당히 전 국가적이었다. 미군 장갑차 사건, 총선, 탄핵..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위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부여받고 있다...
그렇게 보면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지만.. 또 한편 생각이 든다.
권력의 속성.. 이 더 철저히 드러나는 듯한... 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더 철저히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소수의 힘이나 정치적 효과가 적은 사안들은 자연스레 밀린다. 뉴스와 이슈에 집중하게되면 전술적 선택이 명분과 대의보다 우선되고.. 자연스레 하찮아진 영역들이 생겨난다. 사람들의 기대심리는 더더욱 권력의 기반을 갖춘 영역에 집중되고 그만큼 인플레를 거듭한다..
이제 국회의원 몇명의 힘은 별로 감흥을 자극하지도 못한다. 최소 대통령이 한껀 해야 비로소 대한민국의 권력이 움직인걸로 느끼는 것이다. 이럴땐 정말 '엑스페리먼트'가 생각난다. 권력의 획득은 자신의 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더욱 많은 이들이 이 권력에 붙잡힐수록 더욱 막강한 권력이 탄생한다.
그 시절은 어땠을까.
젤로데들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직접적 행동을 하였고 로마인들은 유대 민중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예수의 책임을 넘겼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예수를 처단했다...
예수가 추구한 권력은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해본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는 악마의 유혹.. 기적의 힘을 보여달라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성토...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힘이 우선되던 혼란의 시기였고, 그만큼 사람들은 힘에 이끌려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하느님 나라'를 알려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차라리 대등한 권력의 힘으로, 혹은 세상과 아예 단절된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힘으로 대항하고픈 유혹이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기억하는 것은..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세속적이지 않은, 그런 하느님 나라 운동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파병사태에서, 대한민국의 많은 권력들이 추구하는 노골적인 방향성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분이 한참동안 다운되어 있었다. 꽤 오랜시간 바래왔던 것이 잘 안된거니까... 파병철회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한다. 우리에게 권력이 없어서 못했던 것인가.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면 하지 못할 일을 내가 꿈꿨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감히 희망을 생각해본다.
참고 :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앨벗 놀런, 분도출판사
...헌데 마침 볼려니 책이 수중에 없구먼.. 동주군이 빌려갔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