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해 그리 엄격한 잣대를 가지진 않았기에 아이들이 학습교재로 데려오는 것들을 그저 거두어준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보살펴야 하는건 나일줄도 알았고 나중엔 결국, 키운 정이 우선일 것도 짐작은 했다.
그래서 이 생명들에 대해 냉정하게 있는그대로 설명해줬던 건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미리 되새김한 것일지도 몰랐다.
3령 애벌레로 우리 집에 들어온 충이는 한참은 그 모습으로, 또 한참을 번데기로 흙속에 숨어서 보냈다.
아이는 언제 어른이 되냐고 거듭 물었지만, 왠지 나는 녀석이 어른이 되는 시기가 되도록 늦게 왔으면 싶었다.
성충이 되고서의 시간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고 그동안 녀석에겐 생의 큰 목표가 하나 생기는 셈일테니.
그리고 나는 더이상의 어떤 것은 행하지 않을테니.
우람한 성충이 되고 몇달을 신나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사육통을 온통 뒤엎어 놓기도 했지만..
요 며칠간 먹는 것도 시원찮고 한번 뒤집어지면 바로잡지도 못하더니 그렇게 어느밤 숨을 거뒀다.
간병을 한 것도, 보호자로서 어려운 선택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상주노릇을 하는 심정이었다.
결국 그냥 정이나, 인연일까.
쌓아온 시간과 쏟은 에너지가 사물도 동물도 같이 적용되는 것.
왠지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화단에서 발견한 또 한마리의 죽은 장수풍뎅이를 같이 묻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면식도 없었을 두 녀석이지만 나란히 묻히는걸 보는게 조금 나에겐 위안이었다.